뱃속부터 슬펐던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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뱃속부터 슬펐던 여자

박순 0 1,211 2017.01.04 18:14
뱃속부터 슬펐던 여자(2011. 8. 23일 화요일 오후부터)

2011. 8. 23일 화요일 오후 도봉노인복지관에서 산재근로자들의 재취업을 위한 집단상담을 진행하고
돌아오면서 버스 안에서 문득 이런 제목이 떠올랐다. 오늘 참가한 일곱 분의 삶이 정말 녹록치 않고
여전히 힘든 부분들이 많아서 상담자로서 마음이 많이 쓰이고, 개인들의 삶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된다. 물론 그 개인의 한 사람이 바로 나다. 2009년에 <상담자의 자기분석>이라는
자기고백적인 책을 쓴 적이 있지만, 그 때와는 다른 느낌으로, 다른 목적으로 나를 포함해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쓰고 싶어졌다. 이야기를 두런두런 풀어내고 싶다. 내 안에 쏟아져 나오고 싶은
이야기들이 기지개를 피기 시작하나 보다.

뱃속부터 슬펐던 사람으로서, 그리고 한 여성으로서 나의 삶을 반추하면서 얻어질, 공감되어질
이야기들이 적지 않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그룹에서 비교적 젊고, 처음에 활기차던 어떤
참가자가 회기가 갈수록, 자기 내면을 드려다 보면 볼수록, 그룹에게 솔직해지려고 할수록,
괴로웠던 자기 인생의 무게에 짓눌린 표정으로 두 시간 내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오늘 첫 말문을 제대로 연 S여사는 바로 두 달 전에 30대 초반의 막내딸을 유방암으로
잃었다면서 소리도 내지 못하면서 울었다. 환자 같지도 않게 보였던 딸이 갑자기 쓰러지고
보름 만에 가버렸다며, 딸이 사경을 헤맬 때 아무 것도 해주지 못한 엄마로서의 자책감과
가장 마음에 드는 딸이었다는 이야기며, 믿음이 돈독한 딸이었다는 등 내내 가슴 에이는
이야기로 집단원 모두의 마음을 울렸다.

S여사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벌써 마음이 어두워진 맥가이버님은 부모보다 더 사랑하는
큰누님 가정의 비슷한 상황이 떠올라서 벌써 눈물이 핑 돌았고 이야기 내내 손도 떨고
입도 떨고 눈물을 흘렸다. 부모님에게는 손톱만큼도 사랑을 받지 못한 불행하고 불쌍한
사람으로서 큰누님의 사랑을 가장 의지하고 있는데, 큰누님의 아픔이 바로 자신의 아픔이고,
자신이 당한 산재의 아픔을 누님이 눈물로 맞으셨던 이야기를 하고나서도 내내 울먹울먹
어두움이 가시지 않았다.

그 다음이 어느 분이었던가? 이쁜이님은 부잣집 딸로 어렵지 않게 살다가 연애한 신랑이
똑똑하고 부자인줄 알고 시집왔더니 집도 없고 살림도 없고, 집안이 너무 어려워서 신혼
초에 울고 또 운 이야기를 하였다. 그러다가 시집에서 시어머니의 사랑과 인정을 받아서
정을 드렸고 자녀들이 대학에 갔을 때 가장 행복했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지금 돈이
별로 없지만 자녀들과의 관계가 원만해서 지금이 또한 가장 행복하다고도 이야기한다.
긍정적인 사람이고 나름대로의 지혜로 잘 살아가고 있다.

부지런한 정도인 줄 알았더니 일생 2시간 정도 자고 살면서 5남매를 키우고 시어머니를
모셨단다. 또순이 중의 또순이 수퍼우먼의 이야기가 모두에게 신선하게 다가왔다.
남녀구별 없이 경제활동을 하고, 받기보다 먼저 베푸는 삶으로 일관하며, 자신의 고령의
친정어머니도 쑥을 봉지봉지 팔아 하루에 3만원도 벌고 하신다는 이야기며, 봉제공장을 셋
이나 운영하기도 했고, 굴다리 밑에서 귤 장사로 시작해서 커다란 가게를 이루고 돈을
미처 받을 새가 없이 장사를 잘한 이야기며, 화초 키우고, 운동하고 손주와도 잘 지내는
건강한 이야기로 분위기를 반전시키기도 한다.

청양고추님은 집단 참여에는 열심인데, 개인사 이야기에는 지금까지 좋은 일 하나도 없었고,
행복한 적이 없다고 벌써 3회차인데, 계속 그렇게 이야기를 한다. 아버님이 4살에 돌아가시고,
어머니가 재가를 하면서 또 출산을 했고, 그 계부에게는 벌써 자녀가 셋이나 있었다는 정말 살기
힘들었다는 이야기를 조금 비추고는 얼른 이야기의 꼬리를 자른다. 한 번 터지면 크게 나올 것
같은데, 쉽게 말문이 열리지 않는다.

처음부터 이야기가 하고 싶어서 집단상담을 위해서 보청기 단계를 한 단계 올렸다는 이야기를
깔아 놓고 시작한 만물박사님은 그 애로가 또한 말이 아니다. 이북에서 내려온 강경한 부모님이
아내에게 시집살이를 혹독하게 시켜서 부부가 산에 한 번 같이 가보지도 못했고, 해외여행도
못해보았는데, 아버님이 구순이 넘어서 또 그 다음 해에 어머니도 구순 넘어서 돌아가셔서
올해 처음으로 부부가 한 번 해외여행을 다녀왔노라고 한다. 누우면 산이라고 할 정도고 산자락에
살아도 부부가 한 번도 자유롭게 뒷산에도 못 올라가 보고 70을 맞이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한국의 동방예의지국의 일그러진 단면을 떠올린다.

끝까지 “삐딱선\\\\\\\\\\\\\\\"을 탄 사람처럼 말을 꺼내기 거려하던 백돼지님은 일곱 살 때 작은집으로
양자 갔다가 초등학교 4학년 때 양아버지 돌아가시고 다시 본가로 돌아와서 살게 된 ‘탁구공’
인생의 애환을 말하기가 좀처럼 입이 떨어지지 않는 듯했다. 호적은 그냥 두고 양자 갔다가
오는 바람에 누가 나의 아버지인가에 대해 겪은 혼란과 수치심, 반항심이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고 또렷하게 이야기한다. 어릴 적 가정환경조사서를 쓸 때마다. 정체성의 혼란으로
괴로웠고, 또한 발음하기 어려운 이름까지 가져서 자신이 누구인가 혼란스럽게 지금까지
살아왔음을 이야기하였다.

이런 이야기를 듣고 오다 보면은 상담자인 나의 개인감정이 건드려지기 마련이다.
어머니로부터 들은 이야기 - 너 가지면서부터 아버지랑 틈이 벌어졌다 -는 나의 운명의
전주곡인 셈이다. 지금부터 60여년 전 밤마다 이혼해달라는 남편과 5남매를 두고
그럴 수는 없다고 버티는 엄마의 갈등을 들으면서 나는 무슨 생각을 하였을까?
아마도 - 내가 무엇을 잘못해서 이분들이 이렇게 화가 났을까? 아 참 슬프다.
나의 삶은 뱃속부터 슬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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