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발견의 방법: ‘잊었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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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발견의 방법: ‘잊었던 사랑’

박순 0 946 2017.09.08 10:41
자기발견의 방법: ‘잊었던 사랑’


박 순
2013. 9. 2. 월요일, 아침


나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며, 전공서적을 넘어서 좋아하는 시인의 시집을 일 년에 한두 권은 사는 사람이다. 푸르른 가을 하늘에 시어를 공중에 던져 본다. 운동틀에 한가롭게 누워서 하늘에 하늘등기를 내기도 한다. 아카시아 잎 저 너머 파란하늘은 바로 나의 소유이다. 바라보는 사람의 소유가 되는 자연의 비밀을 즐긴다.

하늘이 파랗고 높이서 생각이 잘 되었을까? 2013년 9월 2일 월요일 아침은 완벽한 날씨를 구현하고 있었다. 늘 하던 대로 뒷산에 올라 이종남 회장님과 배드민턴을 몇 번 쳤다. 이제 박박사도 기술을 한 단계 업 그레이드 해야 하니, 그립을 보다 짧게 잡고 치는 순간에 그립을 꽉 잡아서 스피드와 파워를 높이라고 친절하게 가르쳐 주셨다. 요즈음 스스로도 생각하고 있던 일이라 반갑고 고마운 말씀으로 받고, 노력하는데, 여간 서툴지가 않다. 뜻대로 안 될뿐더러 이전 보다 실력이 줄어드는 것처럼 잘 나가던 셔틀이 계속 짧게 떨어지고 만다. 무엇이 한 술이 배부르랴! 이제부터 겨울까지 기술의 향상을 위해서 주안점을 갖고 마음에 새기고 노력할 일이다. 반복이 습관을 만들고 습관은 곧 나를 만드는 줄 알기에, 배드민턴 실력 향상을 위해서 어금니를 지그시 물어본다.

회장님께 드리려고 가져갔던 호박잎과 늘 들고 올라오시는 빗자루를 들어다 드리기 위해 회장님 댁으로 가는 길로 내려가다 보니, 같은 산이지만 이곳은 조금 다르다. 가을 풀의 향연이 벌어지고 있었다. 어떤 강아지풀은 나보다도 키가 크고 달개비와 관상풀 등이 천지를 이루며 서로 얼키기도 하고 설키기도 하면서, 벌서 가을 햇빛에 이울기 시작하여 풀잎이 불그레해지기도 하였다. 가을 풀의 억샘이란 풀을 뽑아보면 알게 된다. 봄의 풀들이 여리고 가늘며 쉽게 뽑아지고, 한 여름 풀은 무성하지만 비온 다음 날 같은 때에 발목을 잡아채면 잘 뽑혀 나온다. 그런데 가을 풀은 많이 다르다. 어떤 풀은 줄기가 굵어져 나무처럼 단단하고 잘 뽑히지 않는다. 그리고 줄기와 가지가 퍼질 대로 퍼져서 향연을 이루고 있기에 손발은 물론이고 얼굴을 할퀴기도 하며 억세기가 누구의 고집이라고 해야 할지, 잘 수그러들지가 않는다. 엊저녁에는 나의 사랑하는 춘향목 스물다섯 그루를 보호하기 위해서 귀하디 귀한 시간을 내어서 앞 뒤 정원을 다듬지 않을 수가 없었다. 특히나 남의 발목과 허리는 물론 모가지까지 숨 가쁘게 조여 대는 관상풀(진득찰), 예쁘지만 사정 없이 달려드는 나팔꽃, 그리고 그 옆에서 달려오는 호박 줄기와 잎들, 달개비의 군단, 기타 이름 모를 풀들이 나의 사랑하는 춘향목을 그냥 두지 않기 때문이다. 이 춘향목 은 둘째가 2009년 봉화의 지인에게서 사온 것인데, 가느다란 20~30cm의 묘목을 30 그루 사왔다. 양평 박장로님 댁에서 가져온 백송 세 그루와 함께 나의 비밀스런 기쁨의 원천이기도 하다. 서른 그루 남짓한 이 새가족을 살리기 위해서 나는 풀과의 전쟁을 불사했다. 첫해는 아침저녁으로 아이들 주변을 살폈고, 이제 5년차인 이들도 한 달이 넘지 않게 수시로 주변을 살펴드려야 한다. 지난 8월 21일에 풀을 뽑고 꼭 열흘 만에 다시 내려가지 않을 수 없는 형편이 되었다. 신난다고 달려드는 관상풀이 소나무 꼭대기로 가을의 멜로디를 부르고 있는 것이 목격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엊저녁에 앞마당에서는 비교적 쉽게 풀들을 제거할 수 있었다. 올 봄에 옮긴 15 그루 중에 한 그루가 끝내 말라버려서 누렇게 송장처럼 서있어서 마음이 아팠지만, 그의 형제자매를 돌보지 않을 수 없었다. 풀을 뽑다 보니 은행나무 밑에 묻어준 번개 생각이 나기도 한다. 1997년 1월 8일에 저 세상으로 간 번개는 우리와 14년을 함께 하였다. 스피츠를 키우다 1개월 된 진돗개 아가씨를 분양 받았는데 얼마나 빠르던지 입에서 ‘번개 같다’는 말이 나왔고 그대로 이름이 되었었다. 참 비호같이 빠르던 그 아이가 노환이 와서 대문간에 길게 누웠던 모습이 기억에 남아 있다. 제일 좋아하는 우리 남편이 올 때나 무거운 몸을 일으키고, 내가 들어올 때면 “엄마 나 몸 무거운 것 알지? 나 못 일어나요. 몸이 예전 같지 않아요.” 하듯이 그냥 꼬리만 조금 흔들었다. 1997년 1월 6일이던가 추운 겨울 아침, 학교에 간다고 나간 둘째가 금 방 전화가 왔다. “엄마 놀라지마, 번개가 갔어요.” 그 한 마디에 나는 하루 종일 이층에서 한 발자국도 내려가지 못했다. 엄마의 마음이 상하고 놀랄 것을 염려하여 조용하고 친절하게 가르쳐 주는 둘째의 신사도가 늘 고맙고 감사하다. 그 날 밤에 집의 남자 셋이서 장례위원이 되어 앞마당의 은행나무 옆을 파고 번개를 묻었다. 그 해 가을에 은행이 한 말이 실하게 열려서 겨울 내내 밥에 은행을 두어 먹었다. 앞마당에서 번개 묘의 벌초를 끝내고 뒷마당으로 향한다.

뒷마당에서는 진세의 묘를 벌초한다. 올해 1월 진세가 17세의 삶을 마쳤을 때 이번에는 남편이 혼자서 장례위원이 되어 뒷마당 소나무 옆을 파고 거기에 묻어주었다. 남편은 낮에 미리 땅을 파놓고 밤에 시신을 옮겨 놓고 나서 나를 불렀다. 그렇게 둘이서 함께 진세의 묘자리를 기억한다. 진세는 1997년 6월 20일 생으로서 우리나라 유명한 국회의원(현 민주당 당대표)의 본가인 흑석동에서 태어났다. 부모가 각기 진돗개이고 세파드라고 해서 두 이름을 합성하여 ‘진세’가 되었고 우리는 남편의 성씨를 따서 ‘이진세’로 부르기도 하였다. 번개와 살면서는 그다지 가슴 아픈 일은 없었던 것 같다. 젊은 시절이었고 애들이 한 참 자라던 시기였다. 나의 중년을 함께 한 진세는 나의 우울과 나의 아픔을 위로해준 상담견이기도 하였다. 정말 마음이 쓰리고 아플 때 나는 진세에게 모든 것을 이야기하였다. 사람에게 차마 말하기 어려운 것들을 우리진세에게 이야기 하면 그 애는 눈을 껌뻑껌뻑하면서 알아들으려고 애쓰고 가만히 나를 바라다 봐 주었다. 그로써 나는 위로 받았고 그것이면 충분했다. 사랑하는 둘째가 끝내 가정을 해체하는 결정을 내릴 때, 그리고 그 후 몇 년 내 가슴에는 언제나 강물이 가득하였다. 당시 박사과정 중이라 컴퓨터 앞에서도 마음이 자주 무너내렸지만, 나는 1층 마당에 내려가 진세 앞에 쪼그리고 앉아서 나의 마음을 그에게 전달하였다. 동물매개치료법이 있듯이 말없는 반려동물은 인간에게 인간 이상은 위로와 치료의 원천이다. 어찌 하다 보니 앞마당에는 번개를, 뒷뜰에는 진세를 묻고 일년 내내 벌초하고 성묘도 한다.

엊저녁에 벌초도 마치고 호박잎도 뜯고 하면서 이번 추석에는 아들 손주와 부모님 묘에 성묘갈 생각과 함께 손주들과 함께 앞뒷마당의 번개와 진세의 묘도 돌 볼 계획을 세우게 되었다. 진세는 애들과도 정을 나누었다. 비록 아이들이 7년을 미국에 가 있었지만, 진세는 한 눈에 가족으로 환영하고 반겼다. 사실 나는 큰애네가 미국에서 오기 전에 진세가 유명을 달리 할까봐 기도를 했었다. 그래도 고국과 본가에 왔을 때 진세가 살아 있으면 아들네 온 가족에게 작은 기쁨이 되리라고 생각하여서 몇 년 전 부터 무더운 여름을 버거워 하던 진세를 끝내 안락사도 거부하고 함께 동고동락하였던 것이다. 애들 할아버지는 백일도 안 된 어린 손자를 안고서는 진세에게 고함을 질렀다. “아니 왜 그래요?” 이상해서 묻는 나에게 남편은 “ 애들 기 살려 주려고...” 할아버지의 깊은 생각이 이런 행동을 가져오나 보다. 할아버지 품에 안전하게 안겨서 저보다 너무나 크고 무서운 진세에게 할아버지를 따라서 “ 진째야, 이놈~~~~” 하고 고함을 치던 손주들의 모습을 역력히 기억한다. 이제 큰 손주가 12살 6학년이고 작은 손주가 9살 3학년이다. 오늘 생일을 맞는 큰 손주는 올 여름부터 사춘기 2차 성징이 나타나고 있다. 반기고 축하할 일이지만, 어린티를 벗는 것이 아쉽기도 한다.

가을 풀과 반려견 생각에 조병화 시인의 ‘잊었던 사랑’을 다시 꺼내서 음미한다. 소 대신 개의 이야기가 가을 풀과 함께 나의 가을을 엮는다. 이 번 가을 시심에 깊이 젖어 영혼의 메마름을 벗고 순간순간 날마다 숨쉬는 순간마다 감동과 감사의 시를 노래하기를 기도한다. 시몬이 아니라도 낙엽 밟는 발자국 소리가 좋고, 낙엽 태우는 향에 취해볼 꿈을 꾸기도 한다. 가을을 만드신 하나님을 찬미한다. What a wonderful. designer you are!

잊었던 사랑


- 소치는 여인에게. 밀레전에서-
조병화



가을 풀 밟으며

저녁놀 따수한 들녁

소치는 여인

순박한 가슴아

산다는 건 얼마나 숭고한 사랑이냐



사랑은 빈곤의 밀사

인생의 미학

저리게 저리게

가슴으로 스며드는

차가운 방

뜨거운 입김

하루의 노동이 감사로 잠든다



자연은 영혼의 숙소

대지는 사랑의 잠자리

치근할수록 가까와지는

너와 나의 거리

아낀다는 건 얼마나 숭고한 사랑이냐



가을 풀 밟으며

저녁놀 따수한 들녁

소치는 여인

순박한 가슴아


(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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